巳狼, 卯 (사랑, 묘)

편하게 읽으셔도 되는 비하인드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읽기 전 <사랑, 묘>를 먼저 읽는 것을 추천드리지만, 저 같은 스포좋아사람이면 이거 읽고 읽으셔도 무방합니당. 비하인드에는 사랑, 묘 전편 + 번외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목 -巳狼, 卯 (뱀, 늑대 그리고 토끼가 나오는 이야기) -巳狼, 墓 (뱀, 늑대 그리고 죽음)...

팀장 김태형, 김석진. 수사 명, 뱀 사냥. 화이트보드에 선명한 글씨가 빛을 받아 번쩍거렸다. 검사 김석진. 오랜만에 보는 명패에는 먼지가 소복했다. 그 길로 검찰청으로 돌아온 김 선생은 제게 미안하다 고개를 숙여오는 늑대를 한참 쳐다보다 말고, 별다른 타박이나 말조차 얹지 못한 채 사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20년 만에 제집 같던 검찰청으로 돌아온 수석검사...

그날 새벽, 뱀은 잔뜩 피곤한 표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토끼는 어쩐지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 채로 조용했고, 늑대는 거실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바닥에 술병이 가득했다. 맞은 편에 앉은 뱀은 술잔을 받아 들었고, 둘은 대화 없이 한참이나 술을 나눴다. 뱀의 손에는 핏줄이 선명했다. 뱀이 본가에서 무슨 대화를 했는지, 어떻...

“윤기는 어때.” “뭐가.” “언제까지 숨기려고 그랬어. 이 아비한테도, 형한테도.” 이른 아침부터 본가에 내려온 늑대는, 마른 수건으로 바싹 마른 고추들을 닦다 말고 묻는 아버지를 멀거니 바라보다 말고 입술을 물었다. 어떻게든 뱀과 함께 적당히 묻어보려 했는데, 결국 아버지도 알아버린 모양이었다. 그날 이후로 민 회장도, 흑표도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

뱀은 졸지에 휴가를 얻었다. 몸이 이 난리니 어쩔 수 없는 처사였다. 늑대는 아픈 뱀을 핑계로 휴가를 만들어냈고, 토끼는 추석이라며 일주일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간만에 2층짜리 오래된 집이 온기로 복작거렸다. 여전히 배에 두꺼운 붕대를 감고 있는 처지지만, 뱀은 빠른 속도로 낫더니 이젠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 잠이 든 토끼를 안아서 옮길 정도가 되었다. ...

“늣때야, 우리 마중 나갈까?” “그 형은 칼 맞아도 혼자 걸어올 사람이야.” 뱀이 늦는다. 토끼는 커다란 아이스크림을 양껏 퍼먹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서 좋았지만, 밤늦게 혼자 길을 걸을 뱀이 걱정이라도 됐는지, 마중을 나가자며 늑대를 잡아끌었다. 잠옷을 입고 카펫이 깔린 바닥에서 뒹굴던 늑대는 마지못해 몸을 일으켰다. 내가 널 어떻게 이기겠냐, 작은 ...

“조만간 한 번 가겠습니다.” 머리가 지끈댄다. 뱀은 무작정 할 말이 있으니 본가로 오라는 말과 함께 뚝 끊긴 전화를 테이블에 내려놓은 채로 눈을 감았다. 숨이 차고, 손이 차게 식었다. 뱀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 늘 숨이 가쁘고 버거웠다. 일종의 강박이었다. 담배를 입에 문 채로 침대에 누워 천장만 바라보던 뱀은 흘끔 보이는 창밖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

“너 괜찮은 거 맞지?” “뭐가.” “아니, 네 향이 너무 짙길래. 난 네가 나한테 까대기 치는 줄 알았어.” “돌았냐?” 장난스럽게 웃으며 커피를 내려놓는 동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늑대는 곧 별일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곤 빨대를 물었다. 안 춥냐? 잔소리 섞인 타박이 뒤를 따른다. 이제 추워진 날씨에도 늑대는 줄곧 찬 음료를 찾았다. 맞은편에 앉아 시시...

“오늘부터 혼자 자야 해.” “시러.” “우리랑 같이 자면 너 아파.” “아파도 갠차나.” “네가 아프면 우리가 속상해.” 토끼가 퇴원했다. 토끼가 완전히 클 때까지는 잘 때만이라도 떨어져 있으라는 김 선생의 말에 따로 준비된 침실 앞에서 실랑이하던 토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이 아픈 건 괜찮지만, 형들이 속상한 건 싫었다.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

토끼가 아프다. 환절기이기 때문인지, 제아무리 뱀과 늑대가 평소보다 따듯하게 데워놨다 해도 겨울의 얼어붙은 산언저리 같은 집 때문인지, 몸살에 걸린 모양이었다. 게다가 병원에 가자는 둘의 애원 아닌 애원에도 병원 소리만 들으면 경기를 일으킬 듯 우는 탓에 늑대가 사 온 딸기 맛을 흉내 낸 감기약 말곤 토끼의 열을 내릴 별다른 수가 없었다. 잠이라도 자야 몰...

늑대는 출근했고, 토끼는 뱀과 남았다. 토끼는 여전히 뱀의 눈치를 봤다.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손장난만 치던 토끼는 발이 시린지 자꾸만 작은 발을 서로 맞대며 장난을 쳤고, 곧 꼬물대며 담요 안으로 발을 넣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쳐다보던 뱀은 말없이 토끼의 발밑에 무릎을 접고 앉아 뜨거운 물에 한참 담가둬 따듯해진 손으로 작은 발을 감쌌다. 우리 집이 원...

토끼를 주웠다. 비로 젖어 반 정도 찢어진 상자 안에 들어있는 손바닥만 한 하얀 토끼는 가을 초입에 머무는 날씨에 춥기라도 한지 달달 떠는 와중이었다. 제아무리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지만, 이대로 두고 가면 채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얼어 죽을 걸 알아서인지 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피우던 담배를 담벼락에 비벼 끄곤 토끼가 들어있는 상자를 주워든다. ...